핵무기 사용 기준 낮춘 러시아, 실제 사용 가능성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9일 핵 사용 교리 개정안에 서명하면서 핵무기 사용 기준을 대폭 낮췄다. 이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의 미국산 장거리 타격 무기 에이태킴스(ATACMS) 사용을 승인했다는 보도가 나온 지 이틀 만에 이루어진 조치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중 서방을 향해 지속적으로 핵 위협을 가해왔으나, 이번 교리 개정은 비핵보유국이더라도 핵보유국의 지원을 받아 러시아를 공격하면 핵 보복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을 포함하며 이전보다 훨씬 강경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핵 사용 교리는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조건과 상황을 규정한 문서다. 기존 교리에는 러시아나 동맹국이 핵무기 또는 대량살상무기 공격을 받을 때, 러시아 존립을 위협하는 재래식 무기 공격이 있을 때, 탄도미사일 공격 가능성이 있을 때, 핵 보복 능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핵심 시설이 공격받았을 때 핵무기를 사용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번 개정으로 러시아에 대한 침략 정의가 확장되었으며, 핵보유국과의 협력을 통한 공격은 공동 공격으로 간주돼 핵 보복 대상이 될 수 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번 교리 개정은 러시아와 동맹국을 겨냥한 침략에 대한 보복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적대국이 명확히 이해하도록 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고 밝혔다.

개정된 교리에는 러시아와 벨라루스와 같은 동맹국의 주권과 영토 보전에 중대한 위협이 있을 경우 핵 사용을 고려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또한, 러시아에 대한 대규모 미사일, 항공기, 무인기 발사가 시작된다는 믿을만한 정보가 확보될 경우 핵 사용을 검토할 수 있도록 명시됐다. 이는 기존 교리보다 훨씬 유연하고 공격적으로 바뀌었음을 보여준다.

푸틴 대통령의 이번 교리 개정은 미국과 나토(NATO)가 우크라이나에 장거리 무기 지원을 확대하는 데 대한 경고로 해석된다. 푸틴은 서방의 무기 지원이 계속되면 나토와의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며, 서방이 우크라이나를 통해 러시아를 직접 위협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공식화한 것이다. 이는 서방의 장거리 무기 지원이 러시아의 핵 대응을 촉발할 수 있다는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가능성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푸틴이 이번 개정을 통해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명확히 했다고 평가하면서도, 실제로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의 잭 왓링은 “핵무기 사용보다는 서방에 다양한 비용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전쟁을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교리 개정은 유럽과 미국에 대한 심리적 압박을 강화하고, 우크라이나 지원을 줄이려는 신호일 가능성이 높다”며 “핵무기는 여전히 푸틴의 협상 카드로 사용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푸틴의 교리 개정은 핵전쟁 위험에 대한 우려를 다시금 고조시키고 있다. 세계 최대 핵무기 보유국인 러시아의 이번 움직임은 국제사회의 긴장을 높이며, 서방 국가들이 우크라이나 지원과 관련된 전략을 재고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 핵무기를 다시 세계 정치의 중심으로 가져온 푸틴의 이번 조치가 향후 글로벌 안보 질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